나중을 위해 비워 둔 방
주말 오후, 정희는 비워 둔 방에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붙였습니다. 그런데 가족은 그 방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자리로 불렀어요.
노년을 준비하며 집 안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려던 정희가, 가족의 익숙한 부탁 앞에서 오래 미뤄 둔 말을 삼키다 끝내 꺼내는 이야기.
예순둘의 정희는 주말 오후마다 비어 있는 작은 방을 가족의 짐으로 내주고 있습니다. 어느 날 그 방에 자기 이름을 붙여 보지만, 딸의 부탁이 다시 들어오고,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같은 양보가 반복됩니다. 상담가의 짧은 질문 뒤, 정희는 가족에게 처음으로 자기 노년의 자리를 말하려던 마음을 끝내 입 밖으로 내놓습니다.
내 몫을 자꾸 미룰 때
가족을 배려하는 마음과 내 삶에 필요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서로 반대가 아니에요.
오래 미뤄 둔 마음도 천천히 말로 풀어 보면, 가족을 아끼면서 내 삶을 놓치지 않는 길이 보일 거예요.
자기 이름을 붙인 방에 다시 남의 상자가 들어온 그 순간이 오래 남았어요. 저는 그때 정희 씨가 방을 지키지 못해서가 아니라, 자기 몫을 말하는 일까지 오래 미뤄 온 마음이 보였어요. 지금 그 말을 꺼내면 가장 먼저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어요? 다음 이야기는 그 말이 어디에서 멈추는지부터 같이 이어 가요. 오늘은 그 방 앞에 잠깐 같이 서 있었어요.
장면
- 01 · 이름을 붙인 방 01 · 이름을 붙인 방 — 토요일 오후, 정희는 창고처럼 쓰던 작은방을 비우고 접이식 테이블을 펼쳤다. 종이 한 장에 ‘정희’라고 써서 문 옆에 붙인 건 처음이었다. 김정희: 여기서부터는 내 것도 좀 해 보자.

- 02 · 다시 들어온 상자 02 · 다시 들어온 상자 — 두 시간 뒤, 딸 서윤은 맡아 둘 짐이라며 상자를 작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. 정희의 노트는 테이블 아래로 밀렸고, 문 옆의 ‘정희’는 상자 모서리에 가려졌다. 서윤: 엄마, 이것만 잠깐 여기 둘게. 김정희: 그래. 잠깐이면 되지.

- 03 · 또 내준 자리 03 · 또 내준 자리 — 다음 주에도 정희는 자기 물건을 둘 곳을 찾다가 작은방 열쇠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. 온유 선생은 정희가 내민 열쇠를 한참 바라보다가 한 가지만 물었다. 온유 선생: 그 방에서 정희 씨 물건은 어디에 있었어요?

- 04 · 문 앞에서 나온 말 04 · 문턱에서 나온 말 — 또 토요일 오후였다. 서윤이 새 상자를 들고 오자, 정희는 이번에도 손을 내밀려다가 문고리를 붙잡았다. 상자보다 먼저, 오래 삼킨 말이 튀어나왔다. 김정희: 나도 이제 이 집에서, 내 자리가 필요해. 서윤: 엄마?
